포플러의 소소한 흔들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본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예담, 2012. 1. 24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사실 이 책은 재작년에 다른 몇 권의 책과 함께 인터넷으로 사놓고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서도 제대로 꽂히지 못하고 굴러다니던 책입니다.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책 표지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그림에 관한 책에서 이 그림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딸에게 읽어주면서
옛날 유럽에서는 화가들이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자신을 살짝 그려 넣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던 그림이었습니다.
이래저래 괄시를 하다가 올해 집어들고 읽다보니 책장이 꽤 잘 넘어갔습니다.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요한이라는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이 연결해주고 이끌어 나가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작가가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화자가 되어 진행하므로 자전적인 느낌이 들어, 나와 비슷한 연배인 작가의 젊은 시절은 곧 나의 젊은 시절이기도 하여 공감이 더 많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고전적인 음악과 그림을 연상시켜 웅장하리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소박하고 조용한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은 못생긴 여자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의 여주인공은 모두 예쁜 여자들이지만,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못생긴 여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남자와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는 소수이며, 그들이 다수를 지배합니다.
그 이유는 부끄러워하거나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못생긴 우리 자신의 모습도 사랑을 통해 빛을 발하게 되며, 한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인생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소설입니다.
예쁘고 잘생긴 이성에게 몸과 마음이 끌리는 것은 보다 우수하고 적응력 좋은 종족을 생산하고 보존하려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진화 방향일지 모르지만,
요즘의 외모 지상주의는 지나친 진화 과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못생긴 자신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며, 또 아름다운 외모를 부러워하지 말도록 애써봐야 하지 않을까요. 잘 될지 모르지만 ㅎㅎㅎ
또 하나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결론이 두 가지 라는 점입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두 권을 읽은 듯한 느낌.
유화, 크기 316 x 276cm,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소장
<시녀들(Las Meninas)>은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àzquez, 1599-1660)의 대표작.
<시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궁정화가였던 이젤 앞의 화가 자신 벨라스케스와 시녀 도냐 마리아 아우구스티나 데 사르미엔토(Doña Maria Augustina de Sarmiento),
마르가리타 공주 (Doña Margarita María of Austria),
다른 시녀인 도냐 이사벨 데 벨라스코(Doña Isabel de Velasco),
오른쪽 전경에 난장이 마리바르볼라(Maribárbola)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Nicolasito Pertusato)
그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왕비의 시녀장인 도냐 마르셀라(Doña Marcela de Ulloa)와
왕비의 수행원인 돈 디에고 루이스(Don Diego Ruiz de Ascona)
배경 중앙부의 좌측에는 거울에 비친 마리아나 왕비와 국왕 펠리페 4세의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계단 위의 인물은 왕비의 시종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Don José Nieto Velàzquez)
이중 나는 공주보다 난장이 마리바르볼라와 그 앞에 앉아 있는 큰 개가 이상하게 더 눈에 들어옵니다.
책 띠지에 있는 설명을 보니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1899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다."고 적혀있습니다.
마르가리타 공주......
스페인 공주였던 그녀는 두 살이라는 나이에
오스트리아 왕자 레오폴트 1세와 약혼했지만
어린 나이 탓에 혼기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신부를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었기에
스페인에서는 공주의 초상화를 오스트리아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주가 성장해가면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던 주걱턱이 점점 흉해지기만 했습니다.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최대한 흉하지 않게 초상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공주 나이 15살에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사는 듯 보였지만
네째아이를 출산하다 22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그 피아노곡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봤습니다.
장중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섬세하며 조용하고 편안한 멜로디의 곡이었습니다.
파반느(파반, pavane)가 궁정무곡을 의미하는 말이니
젊어서 죽은 마르가리타를 위한 궁정무곡이 아닐까요....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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