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러의 소소한 흔들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독서통신 100) 본문
2024. 9.13. 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Lulu Miller) , 곰출판
어느날 TV를 보다가 연예인 누군가 이 책을 읽고있다는 이야기에 나도 읽게 되었다.
선문답 같은 제목이 왠지 난이도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서 읽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고,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소설 같기도 하고,
과학, 철학, 인문학을 넘나들며, 룰루 밀러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두 사람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작가 룰루 밀러는 사랑을 잃고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순간,
우연히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총장이자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게 되고,
그가 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매료되어 그의 삶을 추척해 나간다.
저자 룰루 밀러 역시 이 세계에서 혼돈이라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만약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조던의 삶을 추척하면 할 수록 또다른 혼동과 충격에 빠지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생을 바쳐 새로운 어종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수천 점의 표본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표본을 정리했으며,
아내와 아이를 잃었을 때도 차분히 대처하고, 또 재혼했으며 다시 아이를 얻었다.
이렇게 굳은 의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자가 말하듯 자기기만에 빠져 우생학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는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하여 인류를 개선하려 하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애나는 그런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다.
룰루 밀러의 조사로 인하여 스탠퍼드 대학내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동상은 철거되었으며,
그가 평생을 바쳐 몰입해 온 어류에 대한 분류도 너무 인간위주의 분류임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가 달린 설치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낙타와 훨씬 가깝고,
고래는 실제로 사슴이 속한 유제류이며,
새들은 공룡이고, 버섯은 식물처럼 느껴지지만 동물에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소, 연어, 폐어 중에서 폐어와 소는 호흡을 위한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으며,
폐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느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무시하고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에 몰아넣은 것은 인간의 일방적인 분류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과도 통한다.
그동안 내가 사실이라 믿었던 범주들을 의심하면 무엇을 얻게 될까?
작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인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에 대해
아버지의 대답인 "의미없어.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라는 대답을
작가는 민들레의 법칙에서 찾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훨씬 더 다양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해준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이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가 된다.
이것은 다윈이 애썼던 관점이고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생물에게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성이 있다는 것이다.
룰루 밀러는 아버지에게 반박할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이 책은 어렵지도 않고 과학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쉽게 읽히는 소설책이지만 철학책처럼 깊이가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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