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러의 소소한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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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S

바람을 담는 집

포플러처럼 2023. 9. 5. 17:44

2023. 9. 4. 월, 바람을 담는 집, 김화영 산문집, 문학동네

 

 

 

 

옛날, 그러니까 내가 20대 시절,

누군가의 소개팅으로 한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불문학 전공자였다.

내가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는 소개팅보다는 시골에서 대화 상대가 없던 차에

문학 얘기나 실컷 하고 오겠다고 하며 집을 나섰다고 

지인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나의 불문학 지식은 일천했다.

아니 전무했다.

 

그렇게 대화는 잘 되지 않았고

소개팅도 다음은 없었다.

 

대학 때 내 친구 중에 한명은

현재 시인이다.

그도 불문학 전공자였다.

 

나는 막연히 문학을 좋아했지만

깊이가 없었고

열정도 없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천천히 책을 읽다가

김화영의 산문집을 접하게 되었다.

김화영은 불문학 전공자였다.

그 옛날, 그러나까 1970년대에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서 유학을 했고

까뮈를 전공했다고 한다.

 

이 책은 세 파트로 되어 있다.

1부, 마음속의 풍경

2부, 책, 글읽기, 문학

3부, 영화, 미술

 

내가 읽은 산문집 중

장 그르니에의 "섬 "

다음으로 좋은 산문집이었다.

언젠가 남프랑스(남불)를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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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흘러가는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 영원을 소유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얼마나 죽음을 닮아 있는가를 삼찟하게 느낀다.

- 사진에 대하여, p46 -

 

인간의 문명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향하여, 원대한 목표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그냥 사는 것임을 잊어버리고 지낸다.

 그냥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기만 하면 매일의 매순간 우리의 진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임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지낸다.

-  삶은 가을 하늘의 둥근 사과처럼 p62 -

 

하루하루는 과일이다.

우리가 맡은 역할은 그 과일을 먹는 것이다.

각자의 천성에 따라 천천히 혹은 미친 듯이 그 과일을 음미하는 것이며,

그 과일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의 혜택을 입는 것이며,

그것으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의 살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다른 의미는 없다.

- 삶은 가을 하늘의 둥근 사과처럼 p62 -

 

그러나 꽃 핀 봄보다도 더욱 빛나는 날은 사과를 따는 가을날이었다.

서리가 내리고 잎이 시들거나 떨어져버리고 나면 푸른 가을 하늘을 베경으로

탐스러운 사과가 자욱이 익어 매달리는 것이었다.  

- 삶은 가을 하늘의 둥근 사과처럼  p64 -

 

도서는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인 동시에 세계 속의 나의 발견이요 확인인 것이다.

- 책, 독서, 교육  p154 -

 

노자(老子)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진흙으로 항아리를 빚어 만들지만

정작 유용한 것은 항아리가 아니라 그 항아리 속의 비어 있는 공간이라고 

- 잃어버린 청춘에 바치는 슬픈 찬가  p226 -

 

자기가 살고 있는 곳 이외의 장소로

무슨 용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바라보는 기쁨, 관조의 그윽함, 

새로운 공간에서 얻는 쾌락만을 위하여 여행하는 것을 뜻하는

"관광"에 인간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 인상주의의 고적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p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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