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러의 소소한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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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포플러처럼 2015. 2. 1. 15:59

2015. 2. 1. (일). 자전거 여행, 글 김훈 . 사진 이강빈, 생각의 나무

 

오래 전 "책은 도끼다"를 읽고

이 책을 읽으려고 인터넷 서점에서 사려고 했지만

절판되어 못 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갔는데

한쪽 귀퉁이에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얼른 빌려와서 읽다보니

더욱 이 책을 갖고 싶어졌습니다.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니

그 욕망을 참기 힘들어

다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니

새로운 출판사에서 다시 나와 있더군요....

물론 얼른 주문했지요.

 

그런데 편집도 많이 바뀌어 있더군요.

표지는 물론 목록도.....

그냥 예전 버젼으로 읽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버젼은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읽기로 하고.....

 

작가가 기자 출신이어서 그럴까요....

문체가 간결하고

뼛속까지 직설적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

전에 소설에서는 스산한 느낌이었는데....

이번 "자전거 여행"을 읽으면서는

이렇게 단백하게 인간의 내면을 맑게 들여다보게 해주는지.....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자전거 여행. 1(한정특별판)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7-12-1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자전거로 우리 땅의 풍경을 누비다! 소설 칼의 노래의 저자 김...
가격비교

 

 


자전거 여행. 2(한정특별판)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7-12-1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자전거로 우리 이웃의 정을 누비다! 소설 칼의 노래의 저자 김...
가격비교

 

 

 


자전거여행. 1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몸과 마음과 풍경이 만나고 갈라서는 언저리에서 태어나는 김훈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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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2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몸과 마음과 풍경이 만나고 갈라서는 언저리에서 태어나는 김훈 산...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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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돌산도 율림리 정미자 씨 집 마당에 매화가 피었다.

1월 중순에 눈 속에서 봉우리가 맺혔고,

이제 활짝 피었다.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품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개 한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사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 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때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것이다.

 

- 꽃피는 해안선, 여수 돌산도 향일암, P 20~24 중에서 -

 

 

인간은 아늑하고 풍성한 곳에서 다툼 없이 살고 싶다.

낯설고 적대적인 세계를 인간의 안쪽으로 귀순시켜서,

그렇게 편입된 세계를 가지런히 유지하려는 인간의 꿈은

수천 년 살육 속에서 오히려 처연하다.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무기의 꿈과 악기의 꿈은 다르지 않다.

철제 무기의 경이로운 날카로움을 정련해가던 가야의 마지막 날들에,

우륵은 가야금을 완성한다.

그의 조국은 한 줄기 산세와 한 줄기 물길에 기대어 있던 부족 국가였다.

위태로운 조국의 마지막 순간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조국을 떠난다.

그는 적국인 신라의 진흥왕에게 투항했다.

그가 버린 조국의 이름은 그의 악기에 실려 후세에 전해졌고,

그의 악기는 신라 천년의 음악 바탕을 이루었다.

진흥왕의 팽창주의는 그가 남긴 순수비에 적혀 있는데,

아마도 역사 속에서,

진흥왕의 무기와 우륵의 악기는 비긴 것 같다.

 

-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경주 감포 P 149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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