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러의 소소한 흔들림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본문
2026. 6. 14. 일,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반성완 옮김, 창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권은
1. 르네상스
2. 매너리즘
3. 바로끄
순서로 쓰여졌다.
1. 르네상스
1) 보편적 합리주의 : 통일성의 원리, 하나의 모티브에 집중되는 묘사의 제한, 한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구도의 통일적 종합
2) 쾨뜨로첸또의 시민예술과 궁정예술의 감상자층
중세 말기 이탈리아의 계급투쟁 뽀데스따(podesta) 로 도시 독재정권으로 씨뇨리아(14~15세기) 체제와 같은 도시국가 체제.
1260년대 말에 새로운 금융귀족과 세습귀족간에 동맹이 이루어져 피렌체의 상층 부호집단에 생기고,
1280년경에는 상층 시민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길드의 쁘리오르(행정관들)들을 통해 피렌체를 통치.
1378년 치옴삐반란으로 경제 민주주의 조건 실현.
노후한 길드조직 테두리 안에서 생산양식의 혁명적 변화에는 한계가 있었음.
뽀뽈로 그라소 대시민 정치권력을 전체 시민계급니 아닌 일부 부유한 집안이 행사하게 되는데
알베르티, 까뽀니, 우짜노, 알비찌, 메디치 가문이 대표적.
1433년 꼬시모 메디치가 실질적 통치와 새로운 인재 등용.
경제의 상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르네상스인들은 상품가치의 실제적인 기준과 그 상대성,
그리고 도덕과 상관없는 가치의 성격을 발견하게 됨.
- 조또와 뜨레첸또
조또의 시대는 유럽 최초로 위대한 시민문화가 번영한 시기로
이 시대 사람들은 경제적 번영을 앞세워 권위의 신장을 꾀했지만 허례허식이나 과시를 추구하지는 않았고
이는 실질적이고 엄격한 예술관으로 이어짐.
뜨레첸또 예술을 끝까지 지배한 것은 조또적 자연주의
1348년 전염병(페스트) 창궐
- 예술 감상자의 여러 계층
예술의 질과 예술의 인기 사이의 간격이라는 것이 오늘날처럼 크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레오나르도다빈치와 동시대의 다른 예술가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함.
질과 인기의 간극이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다만 아직은 크지 않음.
즉,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은 아직 몇몇 정통한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었음.
3) 르네상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예술가들이 길드에서 독립하게 되고 그들이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갖기 시작함. 그 이유는 시장가치의 변화 때문.
사람들의 관심이 미술작품에서 미술가 자신으로 옮겨감.
창조적 개인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싹트기 시작.
지금까지 예술가가 개인적 종교적 숭배를 위한 도구 노릇을 해왔다면
이제는 예술가 자신이 직접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신의 축복도 이제는 그의 패트런과 보호자로부터 그 자신에게로 옮겨졌다.
인문주의자들은 독립의 의미를 구속받지 않음으로 이해했고
그들은 현실과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낭만주의자가 되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현실세계로부터의 소외를 세계에 대한 경멸로,
사회적 무관심을 정신적 자유로,
그들의 비시민적인 사고방식을 도덕적 독립성이라고 부름.
4) 친퀘첸또의 고전주의
- 고전주의와 자연주의
고전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모든 부분의 조화" 라는 미에 대한 규정은
이미 알베르띠에게서 공식화 된 것.
알베르티는 예술작품이란 전체의 미를 손상하지 않고서는 전체 작품에서 어떤 한 부분을 떼어낼 수도 없고
무엇을 덧붙일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 르네상스의 형식주의와 규범성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는 그리스 예술과 비교해보면 온기와 직접성이 결여되어 있고
로마적 영웅주의와 중세적 기사도에 대한 회상으로 가득 차 있고,
인위적 도덕률과 사교 예절을 따름으로써 실제의 자신들보다 더 돋보이려 하며,
생활방식도 그런 허구에 준해서 양식화 하고 있다.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은 그렇게 형식주의와 규범성을 따르고 있다.
콰트로첸또는 세계를 하나의 끝없는 흐름으로 보고
인간이라는 주체는 이 세계에서 보잘 것 없다는 무력함을 느꼈고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세계에 자신을 내맡겼다.
친꿰첸또는 세계를 유한한 하나의 전체로 체험했다.
세계는 인간이 파악한 만큼의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 시기의 모든 완성된 예술작품은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총체적 현실을 그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2. 매너리즘
1) 매너리즘의 개념
- 자연주의와 정신주의
매너리즘은 공간의 르네상스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하나의 장면을 외면적으로 서로 분리했을 뿐 어니라
내면적으로도 서로 다르게 조직된 여러 공간부분으로 분해해 표현하는데서 출발.
매너리즘은 한 그림의 부분부분이 제각기 상이한 공간가치, 상이한 기준, 상이한 운동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 매너리즘과 바로끄
매너리즘은 1520년대에서 16세기 말 사이의 지배적인 양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양식만이 이 시기를 독자적으로 지배한 것은 아니며,
특히, 이 시기의 초기와 말기에는 바로끄적인 경향과 혼합되어 있었다.
두 예술양식의 대립은 실제로는 발전사적인 대립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학적 대립이다.
매너리즘이 정신적으로 귀족적이고 본질적으로 전유럽적인 교양계층의 예술 양식이었다면,
초기 바로끄는 좀 더 민중적이고 감정을 좀 더 중요시하며
나아가 좀 더 민족적 색채가 짙은 정신경향의 표현이었다.
예술 보호를 통해 자신을 선전하고 위용을 과시하려던 동기는
이제는 심미학 향락적 태도 뒤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었다.
고딕이 인간의 형상에 영혼을 불어넣음으로써 근대 표현주의 예술의 발전에 첫걸음을 내디뎠다면,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의 객관주의를 해체하고 대신 예술가 개인의 입장을 강조하며
관중의 개인적인 체험에 호소함으로써 그 발전을 향한 두번째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2) 정치적 현실주의 시대
- 마끼아벨리
마끼아벨리는 그가 살던 시대의 대변자였으며, 비정한 철학자이며
이딸리아 군소 독재자들의 정치방법에 관한 이론 주창.
- 매너리즘의 예술이론
예술 창조의 자유 뿐 아니라 그 무규칙성을 말한 조르다노 브루노의 생각이 그랬는데
그는 규칙이 시의 원천이 아니고, 시가 규칙의 원천이며,
규칙의 수는 진정한 시인의 수만큼 많다.라고 주장했다.
신적 영감을 받은 예술가라는 이념과 자주적 천재라는 이념을 통일하려 한
이 시대의 미학이론
- 피렌체의 매너리즘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예술에 대한 하나의 반항으로 시작되었고,
이로 인한 예술 발전상의 단층을 동시대인들은 의식하고 있었다.
- 매너리즘의 공간묘사
금배경(배경에 금빛을 까는 것)과 원근법은 배경을 처리하는 두개의 상이한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근본적으로 상이하게 대하는 두가지 기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쪽이 인간에서 출발한다면 다른 한쪽은 세계에서 출발하며,
한쪽이 공간에 대한 인물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면 다른 한쪽은 공간을 표상의 기본 요소 내지 감각적 체험의 실체로 간주해서
공간이 인간의 실체성을 압도하도록 만들고
인간의 형상이 공간에 흡수되도록 만든다.
- 브뤼헐
예술에서 자신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모사한다거나 자신들의 사회적 환경을 묘사하는 것은
대체로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사회계층, 즉 사회에서 그들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억압되어 있거나 상승하려는 계층은 그들이 목적으로 설정한 생활상태의 묘사를 보기 원함.
소박한 생활에 대해 감상적인 관계를 맺고싶어하는 사람들이란 일반적으로 그런 생활을 넘어서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브뤼헐 그림은 농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 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계층, 또는 농민이 아닌 도시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3) 기사도의 두번째 패배
- 세르반테스
지금까지의 문학에서는 악한 자와 산한 자, 구원자와 배신자, 성자와 신성모독자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한 사람의 주인공이 성자이자 바보다.
유머감각이 한 사물의 정반대되는 양면을 동시에 보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한 성격의 이중성에 대한 이 발견이야말로 문학에서 유머의 발견을 의미한다.
사실주의적 요소와 공상적 요소가 뒤섞인 문체, 부분 묘사에서의 자연주의와 전체에서의 비사실주의의 혼합,
이상주의적 기사소설의 특징과 통속적 삐까레스끄 소설 특징의 결합,
세르반테스가 소설가로서 최초로 일상생활을 그대로 대화체로 꼰셉띠스모의 기교적 리듬과 표현의 결합시킨 것 등
모두 매너리즘 적이다.
-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셰익스피어의 왕권주의는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공포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무질서를 우주적 질서의 파괴라고까지 생각했고
이른바 천상의 음악을 혁명분자들을 완전히 제압한 평화의 천사가 부르는 승리의 노래로 보았다.
- 세익스피어의 정치적 세계관
발자끄와 세익스피어는 둘 다 자신의 근본적인 보수적 정치태도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전위용사였늗데,
그것은 그들의 동시대인들이 대부분 당대의 상황에 안주하고 있었던 데 반해, 그들은 시대 변화를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고전주의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
- 세익스피어와 기사계급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이들 극중 인물의 이상주의, 천진난만한 순진성과 사물을 쉽게 믿는 우직함 등은
돈끼호떼도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다만 세익스피어의 문학세계에서 독자적인 점은 주인공이 환상의 상태에서 깨어남으로써 겪는 무서운 각성과
나중에 가서야 진실을 깨달음으로써 뒤따르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뇌다.
3. 바로끄
1) 바로끄의 개념
- 바로끄 시대에 예술은 엄격한 의미에서 통일된 성격을 더이상 갖지 않게 된다.
이제 예술은 자연주의적이면서 동시에 고전주의적이고 분석적이자 종합적이다.
바로끄 예술의 비건축적이며 비조직적 구성은 언제나 다소간은 불완정하고 분열적으로 보이며,
또한 어디서나 다시 계속될 수 있고 자신을 초월해 무엇인가를 지향한다는 인상을 준다.
일체의 고정되고 항구적인 것이 흔들린다.
- 통일성의 원리
바로끄 예술에서는 통일성이 추후에 달성된 결과가 아니라 예술적 창조 자체의 선행조건이다.
예술가는 처음부터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대상에 접근하기 때문에
일체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은 결국 그 비전속에 용해되는 것이다.
회화의 구도는 흔히 단 하나의 대각선이나 색채의 한 부분에 의해 지배되고,
조각 형식은 하나의 곡선에 의해서, 음악작품은 전체를 주도하는 하나의 쏠로 음에 의해서 지배된다.
- 예술사의 논리
발전의 정점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역사적 상황, 즉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일정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종결짓고
그 발전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정점이고, 여기서 새로운 전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양식의 변화는 오로지 외부 사정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자체 내에 시한을 지닌 것은 아니다.
- 우주적인 세계 감정
바로끄의 모든 예술은 이런 전율과 무한한 공간의 메아리, 모든 존재의 상호관련성으로 충만하다.
예술작품은 그 총체성에서 모든 부분이 생생하게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로서 우주의 상징이 된다.
고딕을 단순히 중세의 정신주의에서 추출하려는 시도가 그랬듯이
바로끄를 이러한 무한성의 추구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려는 노력 역시 부질없는 일은 아닐까....
2) 궁정적 카톨릭적 바로끄
- 16세기 말경, 이딸리아 예술사에는 하나의 두드러진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
차갑고 복잡하며 주지주의적인 매너리즘이 물러나고
그 대신 관능적 감정적이고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양식인 바로끄가 들어선 것이다.
- 근대 교회예술의 성립
까라바조의 이런 실패가 사회학적으로 더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적어도 중세 이후로는 최초로,
자신의 예술적 특성으로 인해 실패했고 훗날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동시대인들로부터 반감을 산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라바조가 실제로 그의 예술적 가치 때문에 거부당한 근대 최초의 거장이라면
이는 바로끄가 예술과 감상자 관계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는 것을 뜻한다.
- 프랑스의 귀족
궁정 생활의 비현실성은 불가피했으며,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사교적 유희 또는 눈부시게 연출된 쇼에 불과했다.
의리와 영웅적 행위라는 것은 노예적 복종이 국가 이익 및 전제군주의 뜻에 맞을 때 문학적 선전이 붙여준 이름에 불과하다.
- 프랑스의 궁정예술
1661년 이후로는 정신적 제국주의가 정치적 제국주의에 상응하게 되었다.
공적 생활의 어떤 분야도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즉 법률, 행정, 경제, 종교, 문학과 예술분야가 모두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예술계에서는 샤를 르브룅과 부알로가 그 입법자가 되었고,
아카데미는 그 법정이 되었으며,
왕과 꼴베르는 그 후원자가 되었다.
예술과 문학은 현실생활과 중세의 전통, 그리고 광범위한 대중과의 관계를 상실했다.
자연주의는 터부가 되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어디서나 현실 대신에 임의로 만들어지고
억지로 보존된 세계상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 고전주의
고전주의 형식의 요체는 규율과 제한 그리고 집중과 통합의 원리다.
고전주의 미학의 모든 법칙과 규칙들은 형법 조문을 연상시키며,
이런 조문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의 경찰력이 필요했다.
프랑스 예술계가 당면했던 강제가 가징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들 아카데미에서였다.
- 시민적 예술 감상자층
단순하고 별로 까다롭지 않은 예술애호가층의 수요는, 비록 나중에 가서는 하나의 위험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예술가에게 커다란 이득이었다.
그로써 예술가는 개개 주문자의 희망을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다.
단지 나중에 가서는 이런 자유가 무정부적인 시장상태로 인해 과잉 생산이라는 불운을 초래했던 것이다.
- 홀란트의 미술품 매매
예술가가 그의 사회적 근거를 상실하고 생존이 문제시 되는 것도 이때 부터인데,
그가 생산한 것이 과잉상태이기 때문에 그 자신도 익명의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미술품 매매는 또한 예술고객층을 동시대의 예술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3) 시민적 개신교적 바로끄
- 루벤스와 렘브란트
예술가의 정신적 실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
권위주의적 사회질서도 자유주의적 사회질서도 예술가에게는 완전히 편안한 것이 못된다.
전자가 자유를 속박한다면 후자는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자유 속에서만 안전하게 느끼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안전 속에서만 자율롭게 숨쉬는 예술가도 있게 마련이다.
아무튼 17세기는 자유와 안전의 결합이라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 바로끄시대 : 16세기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했으며, 18세기 독일과 남아메리카로 넘어갔다.
1권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2권은 사무실 업무와 겹쳐서 너무 읽다말다를 반복해서인지 정리가 잘 안되었다.
그래서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어 정리하는 정도로 남기려한다.
2024년 12월, 형님과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고 왔었는데
이 책을 좀 더 빨리 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안읽고 버텼는데,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브뤼헐의 그림이 왜 근대 미술의 기원인지... 자연주의의 기원인지 알 것 같다.
매너리즘은 내가 알던 감정에 치우치는 낡은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다.
매너리즘이 르네상스의 시민적 민중적 예술로의 변화 와중에
귀족적이고 교양있는 계층의 예술양식이었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다.
3권을 읽어야 하는데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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